“처음에 그들은 당신을 무시한다. 그다음에는 조롱한다. 그리고 공격하고 불태우려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당신을 위한 기념비를 세운다.” - 니콜라스 클레인
1️⃣ eBay와 PayPal의 사례
2000년대 초 이베이는 세계 최대 온라인 경매 플랫폼이었다. 하지만 거래가 끝난 뒤 돈을 주고받는 과정은 여전히 불편했다. 페이팔은 이메일 주소만으로 빠르게 결제할 수 있게 만들었고, 순식간에 이베이 판매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결제 수단이 됐다.
이베이도 가만히 있지 않았고, 자체 결제 서비스 Billpoint를 밀며 페이팔과 경쟁했다. 하지만 유저들은 페이팔을 선택했고, 당시 페이팔 사업의 약 60%가 이베이에서 발생할 정도로 두 서비스는 이미 떼기 어려운 관계가 됐다.
결국 이베이는 자체 결제망으로 이기려던 전략을 접고 페이팔을 15억 달러에 인수했다. Billpoint도 단계적으로 폐쇄했다. 새로 만들어 이기지 못하자, 이미 승리한 네트워크를 산 것이다.
2️⃣ DAO 1.0의 등장과 실패
DAO는 토큰 홀더가 투표를 통해 프로토콜의 주요 규칙과 금고, 운영 방향을 결정하는 조직이다.
처음에는 모두가 주인이 되는 새로운 경영 방식처럼 보였지만, 현실은 달랐다. 토큰을 샀다고 갑자기 금리 설계, 리스크 관리, 법률과 재무의 전문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투표율은 낮았고, 의결권은 고래와 일부 카르텔들에게 집중됐다. 결정은 느렸고 거버넌스 제안은 부실했으며, 결과에 책임지는 사람도 불분명했다.
DAO를 만드는 도구를 개발했던 Aragon조차 결국 운영 주체인 Aragon Association을 해산하고, 제품 관리를 소수의 위원회에 맡겼다. 모두가 직접 운영하는 구조보다 권한과 책임을 명확히 나누는 방식으로 후퇴한 것이다.
3️⃣ DAO 2.0이 보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최근 DeFi 프로토콜의 DAO 운영 사례들을 보면 DAO 2.0에 대한 희망이 보인다.
토큰 홀더가 최종 통제권을 갖되, 실제 운영은 전문가에게 맡기는 구조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Aave 같은 주요 DeFi DAO에서는 모든 토큰 홀더가 매번 직접 판단하는 대신, 의결권을 전문 참여자에게 맡기고 리스크 관리와 재무, 기술 운영은 전문 조직이 담당한다.
DAO는 큰 방향과 예산을 결정하고, 실제 운영은 경험 있는 집단이 실행한다. 의사결정은 더 빨라졌고 책임 소재도 분명해졌다. 모두가 경영하는 구조에서, 홀더가 감독하고 전문가가 운영하는 구조로 진화한 것이다.
4️⃣ DAO는 이미 DeFi의 심장이다
성공한 DeFi DAO는 단순한 온라인 커뮤니티가 아니다.
어떤 자산을 담보로 받을지, 금리와 수수료를 어떻게 정할지, 금고의 돈을 어디에 쓸지, 발생한 수익을 재투자할지 토큰을 매입할지 결정한다. Aave DAO만 해도 1억 달러가 넘는 자산을 보유한 treasury와 전문 서비스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DeFi에는 이미 제품과 고객, 유동성과 매출이 있다. 마지막으로 남은 퍼즐은 이것을 전문적으로 운영하고, 수익을 홀더 가치로 돌려줄 경영 구조다.
이 구조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거버넌스 토큰은 쓸모없는 투표권이 아니다. 이미 고객과 유동성, 브랜드를 가진 금융 네트워크의 핵심 의사결정권이 된다.
다만 모든 거버넌스 토큰이 이런 자산은 아니다. 토큰이 금고와 수수료 정책, 업그레이드와 수익 배분을 실제로 통제하고, 별도 회사가 핵심 가치를 가져가지 않는 프로토콜만 해당한다.
5️⃣ 최대의 적이 최대의 아군이 된다
당장 내일 은행들이 거버넌스 토큰을 매집한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전 세계 금융기관이 DeFi의 유동성과 네트워크 효과를 인정하기 시작하면 선택지는 달라진다. 수년간 경쟁 제품을 만드는 것보다 이미 성공한 프로토콜의 토큰과 위임 의결권을 확보하는 편이 더 싸고 빠를 수 있다.
기관은 의결권을 통해 프로토콜 전략에 영향을 주고, 자사 고객과 토큰화 자산을 연결할 수 있다. 전문적인 리스크 관리와 영업망으로 프로토콜을 성장시키면서, 보유 토큰의 가격 상승까지 얻는다.
어제까지 DeFi를 위험하다고 비판하던 은행이 내일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이 프로토콜은 수년간 검증됐습니다. 안정적인 수익도 내고 있습니다. 이제 기관 고객들이 사용할 수 있게 우리가 연결하겠습니다.(미리 토큰을 매집해놓고)
그들이 갑자기 탈중앙화의 철학을 믿어서가 아니다. 이제 그 프로토콜의 의결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성은 높아지고, 특정 집단의 독주는 견제된다. DAO는 아마추어 커뮤니티에서 공개된 경영권 시장으로 진화할 수 있다.
6️⃣ 결론
1) 은행과 기관들은 처음에 DeFi를 무시했다.
2) 쓰레기 토큰이 쏟아지고 해킹과 러그풀이 반복될 때는 조롱했다.
3) 그다음에는 자체 스테이블코인과 체인, 대출 상품을 만들며 경쟁하기 시작했다. (현재 상황)
4) 그래도 DeFi의 유동성과 네트워크 효과를 따라잡지 못한다면, 다음 선택은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성공한 프로토콜의 의결권을 사는 것일 수 있다.
DAO 1.0은 모든 토큰 홀더들을 경영자로 만들려다 실패했다.
하지만, DAO 2.0은 토큰 홀더가 최종 통제권을 갖고, 전문가와 기관이 검증된 온체인 캐시카우의 운영을 두고 경쟁하는 구조가 될 것이다.
기관과 은행이 디파이의 의결권을 확보하는 때에, 디파이의 기념비가 세워질 것이며, 르네상스가 도래할 것이다.